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본토 공습 (문단 편집) === 없느니만 못한 [[레이더]] === 위의 문제의 근본에는 일본군의 구시대적인 사상이 자리잡고 있었다. 레이더로 전파를 내쏴서 적의 위치를 감지하는 건 적에게 자기 위치를 알리는 꼴이라고 생각했다. 그런데 이 전파를 내쏘는 게 무섭다면 전파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방식으로 적의 위치를 역추적하는 방법도 있다. 현대의 전자전에서 기본이 되는 레이더 전파에 대한 역추적 목적인 패시브 레이더가 이런 거 할 때 쓰라고 만들어진 것인데, 저 주장을 하고 있을 때도 이미 기술적으로 패시브 레이더는 있었다. 하지만 그런 기계를 사용해서 적에게 자기 위치를 노출시키는 전파탐신에 의지하느니 견시병으로 대응하는 게 더 낫다는 사고방식이었다. 전쟁 초반에는 견시원들의 초인적인 활약으로 재미를 봤었다. 미군 레이더보다 일본군 견시원이 수 km 떨어진 상대를 먼저 발견했을 정도였다. 문제는 전쟁 중~후반으로 갈수록 레이더 성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데 반해 우수한 견시원들은 죽어나간 것이다.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군 육군이나 해군 할 것 없이 똑같이 고정관념으로 가지고 있었다. 이런 사고 방식을 고수했기에 [[야기-우다 안테나]] 같은 걸작 안테나가 일본인들 손에 의해 개발됐음에도 써먹기는커녕 묵살해버렸다. 참고로 이 안테나는 미국의 두 핵폭탄에 장착된다. 그러한 결과 1942년 6월의 [[미드웨이 해전]]에서 [[운명의 5분]], 1944년 6월의 [[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]] 같은 대참사를 빚어내게 된다. 심지어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과 같은 해에 있었던 [[레이테 만 해전]]에서는 항공전에 들어가서는 그냥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지만 어쨌든 일본이 이길 수도 있는 해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, 함대의 후방에 적이 나타났다는 오보 하나 때문에 승리의 기회를 무산시켰다. 이것이 바로 [[레이테 만 해전/경과#s-7.6|구리다 턴]]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